AI 시대일수록 '근본'을 찾는다 - 근본이즘의 역사적 기원
AI와 디지털이 사회를 지배할수록 역설적으로 인간은 '진짜', '원조', '본질'에 매력을 느낀다. 2026년 뜨는 '근본이즘' 트렌드는 사실 수백 년 전부터 반복되어온 역사적 순환이다.
AI 시대일수록 '근본'을 찾는다 - 근본이즘의 역사적 기원
지금 유행하는 이것 - 근본이즘(根本主義), 뭐가 그리 대단한가?
얼마 전 경주박물관에 신라 금관 전시가 열렸다. 1500년 전의 찬란한 황금빛 유물 앞에서 사람들은 장시간 대기 줄을 마다하지 않았다. 전국 곳곳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원조 맛집을 찾아 먼 길을 가고, 할아버지가 사용하던 라디오에 블루투스 기능을 담아 들고 다니며, 1938년 전주 가구 거리의 옛 시계방을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곳이 핫 플레이스가 된다.
이것이 2026년 사회를 관통하는 소비 트렌드 '근본이즘'이다. 디지털 AI가 대체할 수 없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전통, 클래식, 아날로그 제품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단순한 복고(retro)와는 다르다. 과거를 박제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철학과 가치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 전통과 현대의 충돌, 새로운 게 아니다
사실 근본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은 오래됐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영국과 미국에서 일어난 자유주의 신학과 진보주의 사상에 반대하면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영국과 미국 신학자들이 주도한 근본주의 운동은 모더니즘과 세속주의에 맞선 종교적 저항이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있었다. 조선 시대만 해도 개항을 앞두고 재래의 전통 질서를 그대로 지키고 자본주의적인 외래 침략 세력을 배척하는 위정 척사 운동이 일어났다. 19세기 조선의 유생들이 벌인 척사 운동은 '서양 것은 버리고 우리 것을 지키자'는 취지였다. 물론 그들의 저항은 역사의 흐름을 막지 못했지만, 인간이 급격한 변화 속에서 느끼는 불안감과 '근본'에 대한 갈망은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20세기 후반 디지털 혁명이 일어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디지털 기기의 중독 문제에 맞서 디지털 기기 사용에서 벗어나자는 '디지털 디톡스' 운동이 2012년초에도 크게 일어났었다. 하지만 이 운동은 실패했다. 사람들은 다시 디지털에 빠져들었다. 그 사이에 일어난 변화는 무엇일까?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 - 기술은 진화했지만, 그 본질은?
2019년 조지타운대학교 컴퓨터공학과 부교수 칼 뉴포트가 제시한 '디지털 미니멀리즘'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디지털 기기를 어떻게 사용해야하는가에 대하여 새롭게 제시한 개념이다. 완전히 끊는 게 아니라 '선택적 사용'을 강조한다. 이것이 과거의 디톡스 운동과 달랐던 점이다.
근본이즘도 정확히 같은 원리다. 2026년의 근본이즘은 '선택적 계승'이 핵심이다. 과거를 박제하는 게 아니라 본질적 가치를 현재의 맥락에서 재해석하는 능력'이다.
생성형 AI가 일상화되면서 역설적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AI와 인간의 공존이 2026년의 키워드인데, 생성형 AI가 일상화되면서 반대로 인간의 손길, 시간의 흔적, 불완전함의 아름다움이 더욱 빛을 발한다. 기술이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자동화할 때, 인간은 역설적으로 '손으로 만든 것', '시간이 들인 것', '완벽하지 않은 것'에 매력을 느낀다.
이는 역사의 순환이다. 근대화에 저항했던 척사론자, 자유주의 신학에 반발했던 기독교 근본주의자, 디지털 혁명에 맞선 디톡스 운동가들. 모두는 자신이 살던 시대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저항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역사를 다시 반복하고 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LG전자 라디오가 66년 전 디자인에 블루투스 기술을 접목했듯 근본과 혁신은 대립하지 않고, 오히려 견고한 뿌리 위에서 더 과감한 혁신이 가능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점이다.
알면 더 재미있는 이야기 - 근본이즘의 생생한 사례들
LG A-501 라디오의 재탄생
1960년대 우리 할아버지가 즐겨 들던 라디오의 원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사례다. 원목 캐비닛의 질감과 둥근 다이얼, 황금빛 금속 그릴의 디테일을 살리면서도, 내부는 현대식 블루투스 스피커로 재탄생시켰으며 FM 라디오는 물론 스마트폰과도 연결이 가능하다. 60대 이상에게는 청춘의 추억을, 젊은 세대에게는 아날로그 감성을 선물한 것이다. A-501은 출시되자마자 순식간에 완판됐다.
전주 금성당의 변신
1938년 전주 가구 거리에 문을 연 시계방, 금성당은 건물의 구조적 특징과 원형은 보존하면서 카페와 독립 서점, 전시 공간을 더해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했으며, 한 세기 가까이 시간을 새겨 온 역사와 진정성에 사람들이 매력을 느낀다.
원조 맛집의 '근본' 트렌드
SNS 인증보다 '원조의 맛'을 찾아다니는 MZ세대가 늘고 있다. 단순히 '맛이 좋아서'가 아니라 '오래된 곳이 가지고 있는 진정성'에 끌린다. 역사와 철학이 담긴 음식의 맛이 핵심이다.
영상 추천도서: "근본의 시대가 온다"
2026년 트렌드를 다룬 각종 리포트(트렌드 코리아 2026, 2026 트렌드노트 등)에서 '근본이즘'과 '아날로그 감성'이 핵심 키워드로 등장한다. 또한 칼 뉴포트의 『디지털 미니멀리즘』(2019)은 현대인이 어떻게 기술과 공존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참고자료다.
결론: 과거를 깊이 이해할 때, 미래가 보인다
근본이즘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인간이 급격한 변화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의 역사다. 19세기 척사론부터 현대의 근본이즘까지, 그 맥락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우리 안에는 영원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근본이즘은 과거를 그대로 복제하는 게 아니라, 본질은 지키되 시대에 맞게 재해석한다. 그것이 바로 2026년을 사는 현명한 방식이 아닐까.
글쓴이: 추익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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