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년 만에 다시 법정에 서다, 동아·조선투위의 재판소원 그 뜻
1975년 자유언론 투쟁으로 해고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들이 51년 만에 헌법재판소에 재판소원을 제출했다. 당시 대법원 판결을 뒤집고 기본권 침해를 인정받기 위한 마지막 도전이 시작됐다.
51년 만의 법정 투쟁, '언론의 자유'를 향한 염원
1975년 자유언론을 위해 싸우다 해직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들이 해고무효 확인 청구소송 대법원 확정 판결을 취소해달라며 헌법재판소에 재판소원을 냈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와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투위)는 1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재판소에 재판소원을 청구했다.
한 지점을 응시하는 눈동자가 흔들릴 정도로 긴 세월이다. 51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들이 견뎌야 했던 절망감이 얼마나 깊었을까. 51년 전 동아일보 조선일보에서 자유언론 실천 운동을 벌이다가 각각 부당해고 당한 것에 대해 대법원에서 인정받지 못한 판결을 바로잡아 달라는 것이다.
광고 탄압, 그리고 기자들의 외침
이 비극의 시작을 되짚어보면, 박정희 유신독재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은 신문, 방송, 잡지의 외부 간섭 배제·기관원 출입 거부·언론인의 불법연행 거부 등을 골자로 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는데, 박정희 정권은 동아일보의 움직임을 억제하기 위해 각 기업체 및 기관에 광고 철회 및 해약 압력을 가했다.
박정희 정권의 광고 탄압으로 동아일보는 3면 백지 상태로 발행됐다. 신문사의 광고판을 하얀 종이로 채워야 했던 그 광경. 그것은 단순한 경영난을 넘어 정권의 언론 탄압에 대한 저항의 외침이었다.
동아일보 경영진은 농성 기자들을 강제 해산시키고 주도적인 기자 160여 명을 축출했다.
법원이 외면한 '국가권력'의 실체
더욱 가슴 아픈 것은 당시 사법부의 판단이다. 대법원은 1979년 1월 동아투위, 1980년 9월 조선투위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대법원의 판결은 국가권력의 위법한 언론탄압이라는 본질을 회피하고 보도통제를 벗어나 자유언론 수호를 위한 활동에 대해 경영난에 의한 감원의 불가피성과 사내 질서 위반 등을 이유로 한 징계의 정당성만을 판단했다.
하지만 그 '경영난'이 과연 사실이었을까? 동아투위는 동아일보가 1973년 3400만 원, 1974년 4600만 원, 1975년 1억2800만 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는 점을 들어 '겨우 석 달의 광고 탄압으로 신문사가 휘청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주장한다.
51년 만의 재도전
새로운 희망의 빛이 들어찬 것은 최근이다. 법원 판결에 대해 헌법소원을 허용하는 재판소원 제도는 3월12일부터 시행됐다.
재판소원 청구인은 동아투위 권영자 초대 위원장, 이부영 현 위원장, 임채정 전 국회의장 등 동아일보 해직기자 37명과 유족 20명, 조선투위 기자 2명이다.
과정은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재판소원을 낸 두 사건은 대법원 확정 판결 후 50년 가까이 됐다. 그러나 변호사들은 "공권력에 의한 기본권 침해 구제를 위해 헌법소원 제도를 도입한 취지를 살리고, 40년이 훨씬 지나 재판소원을 제기한 걸 청구인들의 잘못으로 돌릴 사유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
언론의 자유에 시효는 없다
이 사건이 헌재에 의해 받아들여져 인용 결정까지 될 경우 두 언론사의 해직 언론인들은 1975년 해직된 지 50여 년 만에 해고의 부당성을 인정받게 된다.
역사의 바퀴는 빠르지 않다. 때론 멈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이 지켜내려 했던 '언론의 자유'는 단지 한 신문사, 한 신문사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이 땅 모든 사람들의 기본권, 민주주의의 토대였다.
신홍범 전 조선투위 위원장은 "헌법재판소는 언론자유의 가치엔 시효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가치를 지키려는 운동은 정의롭다는 것을 증명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제 그들의 음성이 헌법재판소에서 울려 퍼질 차례다. 51년 만에 다시 펼쳐지는 법정에서, 과연 진실이 빛을 발할 수 있을까. 그것이 이번 재판소원이 갖는 의미일 것이다.
기자: 오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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